25살에 시한부 선고 받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지금 시간이 시간이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 글에 인증을 남길 수는 없지만(추후, 상황이 되면 따로 인증하겠다.) 제목처럼 나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있다.

그것도 8월 7일 부터 담당 의사선생님에게 정식으로 판명받은 것이니 따끈따끈한 시한부 새내기라고 할수있겠지.

이것 참 기가막힐 노릇이다. 89년생 올해로 25 해를 살아오면서 몸이 조금 허약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빨리 죽음이 내게 찾아올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2년여 전에 신장암 초기로 삼성서월일원 병원 암센터에서 복강경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종양 크기가 2센치 정도 밖에 되지않았을 때 우연찮게 발견한 것이라 “나는 참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뭣모르고 그대로 살았더라면 그대로 전신에 암이 퍼져 죽고말았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와서 내처지를 보면 나는 어떻게든 죽을 운명이었나보다. 대략 세네달전 부터 왼쪽 흉부 아래쪽이 쿡쿡 쑤시면서 아프더니 검사받기 이 주전 쯤부터는 누워 잘때 무언가 이물감이 느껴지기도했는데 그것이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게 진행되버린 폐암덩어리인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피씨-방에 친구들과 자주 다니기도하고, 담배연기 많은 술집에도 종종 가긴하지만, 담배는 거진 피우지 않았고 오래달리기도 퍽 잘하는 터라 폐암과 나는 거리가 멀다고생각했다. 고등학교시절 오래달리기를 할참이면,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내달리는 반 아이들 중 한손에 꼽을 만큼 선두에서 달렸을 만큼 폐활량을 자랑하던 나였는데, 매년 받는 정기검진에서 “폐암” 판정이 나오다니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니, 솔직히 처음에는 뭔가 병원 측에서 착오가 생겨 다른 환자와 진료기록이 뒤바뀌어 이런일이 일어났을 거라고생각했었고, 내가 한참을 현실감없는 표정을 짓고있자 재차 천천히 내 현재 상태를 되새겨주는 담당 교수(암센터 비뇨기과 전성x)님의 입모양새의 움직임이 “넌 곧 죽어, 그게 현실이야”라는 내용을 아주 길고 우아하게 포장해서 내뱉는 것에 마침내 ‘그것이 진짜고 현실이구나’ 라는 것을 깨닳을 수 있었다.

되게 재밌는 사실은 의사 선생님에게 그 말을 직접 전해들을 그 당시에는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내 일이 아닌것마냥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대강 이야기가 끝나고 병원 복도의 공기가 폐속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에 어지러워지더니 곧장 쓰러질것같았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그렇게도 저질렀길래 이토록 가혹한 일이 내게 일어나는지, 신이 있다면 정말 원망스러웠고, 없다면 없는 대로 더욱더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 가족들 얼굴과 여자친구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이제 어떻게해야하지… 뭐라고 말해야하나, 아니 말을 해야하나…” 따위의 매우 전형적인 양상을 띈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뒤덮었고 서울에서 지방에 있는 집으로 내려오는 시외버스를 타면서부터는 다큰 성인 남자가 거진 두시간 반정도를 질질짰던것 같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어본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내 기억안에서지만…)

한참을 울었는데도 어디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나오는지 버스가 도착하기전까지 끊임없이 흘러내렸고, 나도 쉼없이 슬퍼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생각한 것은 “여자친구와의 결별”이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 오래살아봐야 몇년 밖에 남지 않은- 그런 미래없을 남자인 나때문에 결혼적령기에 들어서는 그 여자를 내 욕심으로 붙잡고있기에는 내가 너무 나쁜사람이 될것같았다.

예전에는 내가 비록 지금은 능력이없고 비루해도 이 여자와 같이 인생을 살면서 하루하루 부끄럽지 않게 살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좀 없이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가만히 생각해보니 꼭 내가 아니어도 나보다 그 여자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멋지고 잘난놈들이 세상에 널리고 널려있겠더라.

나로 인해 내 여자친구가 행복하고 그래야만하고, 그렇게 되기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만의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있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별의 별 생각이 다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동안 밖을 배회하다가 집 현관문앞에 도착했다.

현관문 번호키를 떨리는 손으로 몇번이고 문지르고 한숨 몇번 쉬는 새에, 마침 동네 아주머니와 운동을 하고오신 어머니와 마주치게되었고 “왜 안들어가고서있어? 어여 들어가자 덥다”라고 평소처럼 들려오는 육성에 왈칵- 눈물을 쏟을뻔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리고 집안에 들어갔다.

집안은 얼마전에 새로산 에어컨덕에 시원했고, 식탁 위에 메달린 등에서는 은은한 주황빛이 꽤 고급스럽게 뿜어져나왔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을 것들이 굉장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곧바로 쏴아-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샤워하시는 소리였겠지.

지금 생각해봐도 우습지만 그때만큼 내 주변에서 들리는 원초적인 것들에 집중해본일이있었을까.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눈에서 비산하는 전구의 빛들과 경쾌하게 부딫치는 물소리, 왠지모를 떨림에 내 왼쪽 발꿈치와 냉장고 바닥면이 부딪치면서 나던 둔탁한 소리들…

모든것들이 내 머릿속에 그대로 박혀서 녹아들었다.

그러다가 스스로도 어이가없어서 웃음이나왔는데, 내일 당장 죽을 것도아닌데, 죽는대봐야 몇년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은 것을 곧 죽을 사람처럼 행동하는 내 꼬락서니가 우스웠다.

그런 저런 생각하는 와중에 어머니가 샤워를 마치고 옷을 단정히 갈아입으시곤 거실로나와 형식적이지만 대단한 질문을 하셨다.

“그래, 병원에서는 뭐래니?”

“그냥 멀쩡하대요.”

좋은 연기, 한번도 연습해본적이 없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잘토해내었다.

왜 그렇게 대답해야만했는지는 스스로가 잘알고있기때문에 다시 생각핼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만큼 잘 대답했다는 것에 스스로가 왠지 뿌듯했다.

물론, 영원히 숨기긴 어려울테니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는 지금부터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정말 피곤하고, 또 졸리지만 내게 여기있는 많은 사람들보다 시간이 적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시계속 초침이 가는 것이 그렇게도 아쉬울수가 없구나.

앞으로 기회가되면 또 글을 쓰도록하겠다.

두서없는 글 읽어줘서 고맙다.

(후기)

한달전쯤에 시한부 인생.SSUL을 썼던 놈다.

인증이 없어서 그런지 인기글까지 갔던게 폭풍 하락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짜피 인기글가려고 쓴글은 아니었으니까.

중요한건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폐암선고를 받고 남은 인생이 얼마 되지않는 다는 것을 알았을 적에도 오늘날 이시간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한순간 하루 살아있다는 것을 되새길수록 나에게는 항상 새롭다.

여기에 글을 올리고난 후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일들이 있었다.

조금씩 피부속으로 파고드는 고통을 혼자 끙끙앓아대다가 결국에는 가족에게 들켜버려서 온집안이 이미 내가 죽은 것처럼 떠들썩하게 슬퍼하다가,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받아보자고 의견일치가 된 순간부터는 모두가 내앞에선 웃는 낯이 되었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덜받게해서 몹쓸병에 조금이라도 먹이를 주지않을 심산일것이지만 그게 날 더 슬프게했다.

모두들 날 위해 자기 감정하나 솔직하게 드러내지못하고 애써 눈물을 감추는 모습을 보면, 되려 내가 화가나서 가족들에게 못된짓을 많이했다.

잘 먹던밥을 내동댕이치기도하고, 맞던 링거를 뽑아내서 팔에 온통 피칠갑을 해놓기도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건 정신병자마냥 병원을 몰래 탈출해서는 담배연기가득한 피씨방에 간것이었는데, 딱히 하고싶은 게임도 없었거니와 환자복입고 나돌아다니는 꼴이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그곳에가면 왠지 가족생각부터해서 내가 곧 죽을것이라는 생각까지 모조리 지워버릴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생각처럼 그 생각이 쉽게 떨쳐지지도않았고 이런저런 시도도 해볼새없이 냉큼 잡혀들어온 마당에야 내가 할수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참 재미있는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런것들이 그나마 나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만드는것같다는 것이다. 하루왠종일 병원에 갇혀서 알지도못하는 이상한 이름의 수액들과 주사들, 핵의학검사랍시고 두꺼운 철판으로 온몸 전신을 찍어대는 일들을 겪으면서 언젠가 인터넷에서 다운받아본 707 마루타와 같은 신세보단 훨씬 나았다.

뭐, 내 상태가 원체 악화되어 병원에 있는것이 무의미해지기 전까지 이야기이긴 하지만말이다.

요 며칠전에와서는 병원에서 나와 집에 머물면서 그냥 통상적 치료들만 받고있다. 의사들도 내가 입원당시부터 상당히 살아남기 힘든 케이스의 환자라는 것을 알고있었는지, 되도록이면 치료보다는 휴식을 취할것을 권했고 나도 그러길 바랬다.

몸만 허락한다면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행다운 것을 해보고싶지만, 지금은 몸이 성치않아 그럴수도 없구나.

나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않다. 치료받는 것을 한달만에 그만두었으니 앞으로 살날이란 고작해야 이삼개월쯤 될까.

그안에 내가 무엇을 해야 짤막한 소풍,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하고 잘 죽을수 있으련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데 나는 고작 남들보다 몇십년 일찍 죽는다고 유난떠는게 아닌가싶기도하다.

저기 중동이나 어디 아프리카에 가면 나보다 어린친구들이 먹지도못해 그대로 굶어죽는다는데, 그래도 나는 행운아인셈이지.

그래도 앞으로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상 무언가 값진일들을 하고싶다.